2011. 10. 26. 11:06ㆍ뉴스레터
그동안 잊고 살았던 그 땅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민홍기(샘복지재단 후원이사)
황해도에서 사시다가 월남하신 아버지께서 고등학교 3학년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지만 생전에 약주만 드시면 '꿈에 본 내고향' 노래를 부르시고 이따금씩 고향생각에 눈물 지으시던 모습이 생각이 난다. 72년도 남북대화 때는 곧 고향에 가신다고 밤새도록 라디오 뉴스를 들으시며 흥분해 하시던 모습도 기억나고 그래서인지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그 땅은 내게 늘 거룩한 부담이었다.
청년시절엔 교회에서 일일찻집으로 생긴 수익금을 강 건너에 성경을 보낸다는 선교회에 보낸 적도 있었고, '천국의 국경을 넘다'라는 다큐물을 보고서는 관련 선교회에도 관심을 가졌었는데, 산울교회 서영임 목사님께서 작년 선샤인 프로젝트에 참여하시고 '사랑의 왕진가방' 책을 선물해주셔서 읽게 되었다. 너무 은혜를 받아 샘복지재단과 연결이 되었고 선샤인 프로젝트를 사모하는 마음을 주셔서 공지를 보고 일찌감치 지원을 하였다. 막상 일정이 다가오자 일도 바쁘고 한달 전에도 열흘간의 일정으로 태국 비전트립도 다녀오게 되어 고민도 되었다. 그래도 믿음으로 결단하고 당일 공항을 나갔지만 태풍에 비행기는 결항되었다. 집이 가까운걸 위안삼고 돌아와 월요일에 다시 비바람을 헤치며 공항에 갔지만 이번엔 호텔에 가서 대기하게 되었고 항공편이 준비되었다는 연락에 촉박하게 수속하고 도착한 대련공항에서도 버스기사를 못 만나 애태우다 만나는 우여곡절 끝에 단동병원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다시 버스에 올라 장백까지 달리는 버스 창문너머의 강 건너 땅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이곳에 왜 나를 보내셨는지, 내가 무엇을 보며 무엇을 듣기를 원하시는지, 내가 무엇을 깨닫기를 원하시는지’ 묵상하며 갔다.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창문 밖의 압록강은 정말 폭이 좁았고 강 너머의 북한은 너무 가까이 있었다. 중국 쪽으로는 철조망이 쳐있고 철조망 너머의 북한 주민들은 어디론가 가는 사람들.. 강가에서 빨래하거나 수영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북한군 초소와 막사 군인들의 모습들이 보였다. 이렇게 가까운데 이렇게 강이 좁은데 여기를 사이에 두고 굶어 죽어가는 북한 동포들이 있다는게 정말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하나님 언제까지 입니까? 언제까지 두고보시렵니까? 언제나 저 북녘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겠습니까?
저 땅을 위해 제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마음만 무거웠다.
늦은 저녁을 먹고 피곤해서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 일어나니 산울교회 예중이가 배가 아파 잠도 못 잤다고해서 사혈침으로 따주고 나니 이번에는 꿈마을 엘림교회 학생들이 셋이나 배가 아프다고 누워있었다. 셋이 한꺼번에 배가 아프다고 하니 정신도 없었지만 다 따주었다. 내가 해외여행도 다녀보고 중고등부 학생들이나 교사들이랑 수련회나 리트릿도 많이 다녀봤지만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오게되고 넷이 한꺼번에 아프다고 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런게 악한 영들의 방해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고 남은기간에도 무슨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어 긴장속에 기도하게 되었다.
A교회에서의 예배와 제대로 준비하지못한 찬양이지만 찬양을 부르며 은혜가 되었다. 동포인 C자매의 간증을 들으며 목숨을 담보로한 신앙에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고 그동안 먹고사느라고 잊고있었던 아니 외면하고 살았던 북한에 친고모와 배 다른 누나가 있었다는걸 생각나게 하셨다. 북한 동포가 남이 아니고 내 부모고 내 형제였다. 그렇다! 내가 너무 무심했었구나 자책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4년만에 다시 보게된 백두산 천지... 역시 울컥하였다. 중국 군인이 경계비에 서서 위세를 부리는 것도 보기 싫었고 4년 전에 서파로 가서 5호 경계비쪽에 올라갔을땐 안 그랬는데 시간이 흘러 그런건지, 이쪽은 원래 그런건지 씁쓸했다.
수풍댐 강변에서 배를 타고 북한 가까이 다가가서 학교에 갔다오는 것 같은 애들, 강변에서 낚시를 하는 어린애들, 우리를 보며 손을 흔들어주는 애들을 보며 '우리는 남한에서 태어나서 돈들여 이곳에 와서 배를 타고 보는데 저 애들은 단지 북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저렇게 힘들게 살고 있구나 나도 북에서 태어날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실 안으로 들어와서 드리는 선상 기도회, 북한 땅에 하나님의 마음이 그곳에 계시며 우리의 마음도 그곳에 함께 하기를 바라신다는 전도사님의 말씀에 '아! 하나님의 응답이시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로 찬양과 기도를 드리다 보니 배를 내리게 되었다.
단동병원 이전현장을 둘러보고 공사를 맡아서 감독하시는 장로님과 병원에 도착해 예배를 드리며 병원을 섬기시는 분들을 뵈며 그리고 정말 뵙기만 해도 은혜가 되는 본부장님을 짧은 기간이나마 가까이 뵈면서 '나도 저 연배가 되면 저렇게 멋있게 살아야 할텐데' 하는 마음을 주셨다. 우선은 돈을 더 벌어야겠지만 주께서 허락하시고 내가 준비가 된다면 남은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은 내가 뵌 분들처럼 드려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주셨다. 그러려면 영적으로도 훈련되어지고 사회복지나 한국어를 가르칠수 있는 자격도 가지고 있으면 좀 더 유용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선샤인 프로젝트의 감동이 펄떡 거릴 때 우선순위를 정해 시작을 해야겠다. 주께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6:8) 라고 할 수 있도록 영육간에 준비하며 이제까지 살아왔던 내 계획과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대로 절대헌신 절대순종하며 남은 생애를 드리고 싶다. 주님! 사랑합니다. 나를 받아 주시옵소서! 하늘 문을 여시고 주의 나라가 삼천리 강산에 온 땅에 속히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샘복지재단을 섬기시는 모든 분들, 특히 선샤인 프로젝트를 위해 수고해주신 본부장님, 실장님, 무엇보다 한 주간동안 함께 하며 섬겨주신 주향 간사님과 진주 간사님께 감사드리며 축복합니다.
2011 단기선교를 마치면서...
하동교회 정삼수 장로님
2007년 '사랑의 왕진가방' 재포장으로부터 2011 비전트립(2011 선샤인 프로젝트)을 거치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1만개의 왕진가방 포장으로 육체적으로 힘들고 지쳤지만 매순간 순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하신 하나님(발바닥에 파스를 붙여가면서), 그 때의 그 감동과 열정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처소교회를 방문하고 A교회, 집안 단결교회, 동광교회, 서탑교회들을 방문하면서 제 마음에 서서히 하나님의 은혜로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서는 받을 직분을 다 받았지만 믿음에 도전 받지 못했으며 안일한 신앙생활로 지내옴을 회개하며 많은 경험과 체험을 주신 단기선교를 할 수 있게 하심을 감사드리며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립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지냄에 미안하고 죄스러운 맘이었습니다. 저 강건너 저들에게, 변방에서 수고하시는 선교사님께, 그리고 하나님께 죄송스러웠습니다. 모든걸 내려놓고 수고하시는 H 선생님을 뵈면서 많은 반성과 도전받게 하심 감사드립니다. 내가 붙들고 있는 욕심과 근심 걱정 내려놓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삶이 되길 기도합니다.
많은 걸 쓰고 싶은데 부족합니다. 항상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며 중국 땅과 강 건너 북한 땅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삶이 되길 원하며 선교사역과 내 것을 내려놓는 자로 변화받길 원합니다. 단기 선교자들에게 너무나 애쓰시는 간사님과 H 선생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힘내시고 작은 동역자이지만 동역자로서의 삶을 살기를 소원합니다.
저 북녘 땅에 덮고 있는 우산이 뚫어지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으로 하나되는 이 땅이 되길, 그 일에 저 자신도 작은 동역자이길 기도합니다. 육적으로는 너무나 호사스러운 숙박, 음식, 차량이란 생각도 들었지만 영적으로는 더욱 뜨거운 비전트립이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걸 하나님께 영광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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