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 2. 15:40ㆍ뉴스레터
"1907년 성령의 불이 조선에 임했을 때"
본문은 1907년 평양 대부흥 당시 캐나다출신 선교사 조나단 고퍼스가 목격하고 기록한 것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조선에서 부흥 운동이 처음 시작된 것은 1903년이었다. 조선의 동해안 원산에서 사역하던 로버트 하디 선교사가 한 작은 기도회에서 기도에 관한 말씀을 준비하던 중 요한복음 14장과 그 밖의 성경으로부터 큰 은혜를 받게 되었다. 기도회에 참석했던 선교사들과 조선 그리스도인들도 하디 선교사의 말씀에 감동을 받았고 1904년까지 1만 명의 조선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부흥운동은1906년까지 권능과 영적 결실을 맺는 가운데 계속 되었다.
1906년 9월 서울에서 열린 한 선교사 모임에서 뉴욕출신 하워드 박사가 인도 카시아 지방(Kassia Hills)에서 일어난 부흥운동을 얘기할 때 많은 선교사들이 눈이 열리고 심령이 나난해짐을 느꼈다. 이 중에서 평양의 감리교와 장로교 소속 선교사 20여 명은 인도 카시아 지방과 동일한 하나님의 축복이 평양 땅 가운데에도 임할 때까지 정오에 모여 같이 기도하기로 작정하였다.
그렇게 시작된 정오기도회가 한 달 가량 되었을 때 한 형제가 '우리가 약 한달을 기도해 왔으나 아무런 특별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며 기도회를 중단할 것을 제의했다. 그러나 대다수 선교사들은 부흥의 축복을 평양에 내려주실 줄 믿고 기도회를 계속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그들은 기도 시간을 줄이기보다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기도하기로 결정하고 저녁시간까지 자유롭게 기도할 수 있도록 12시 정오에서 오후 4시로 기도회 시간을 변경했다. 그들은 그렇게 4개월 가량을 기도했으며, 그 결과 교파를 초월하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참된 교회의 연합이며 하나님꼐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듬 해 1907년 1월, 4개월 간의 기도가 끝나는 마지막 주간이 되었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것이라는 선교사들의 기대감도 점점 커져갔다. 그러나 마지막 날까지도 하나님의 어떠한 은혜도 없었다. 마지막날 주일 저녁 1,500명이 모인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길선주 장로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간과 같은 자입니다. 나 때문에 우리를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 없었습니다. 약 1년 전 임종을 앞둔 한 나의 친구가 나를 자신의 집에 불러 부탁했습니다. '길 장로, 나는 곧 세상을 떠날 것 같소. 내 아내는 그만한 능력이 없으니 자네가 내 재산을 정리해주면 좋겠소.' 나는 '걱정마시오, 내 그렇게 해 주리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그 미망인의 재산을 관리하던 중 나는 미망인의 돈 100달러를 사취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가로막았습니다."
그 순간 모든 마음의 벽들이 허물어 내렸고 하나님이 그 예배 가운데 함께하고 있음을 느꼈다. 죄에 대한 통회가 청중을 휩쓸었다. 다음날 새벽2시까지 계속된 회개의 영 가운데 수십 명이 울면서 그들의 죄를 고백할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 집회를 시작으로 조선에서는 회개의 역사가 놀랍게 일어나게 되었다.
-5+6월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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