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복지재단 5+6월 소식지 [특별한 인터뷰 - 박세록 원장]

2008. 1. 3. 10:21뉴스레터

 

 

오늘도 하나님의 사랑싣고 왕진갑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 '사랑의 왕진가방'

20년 북한사역의 모든 에피소드를 한 책에 담은 박세록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번 한국 사람은 영원한 한국 사람

전쟁과 가난이 싫어 의대를 졸업하자마자 미국으로 건너간 지 20년, 88올림픽을 통해 잊었던 조국을 다시 만났다.

"마침 서울올림픽이 한창이었습니다. 텔레비전 앞에 앉아 간간히 비춰지는 달라진 조국을 보며 목이 터져라 한국을 응원했지요. 서울 하늘에 휘날리는 태극기를 보는 순간에는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와락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조국을 떠난지 아무리 오래 되었어도 나는 한국사람이었던 것이지요." 그 해 인도의 한 대학에서 한 달간 교환교수로 있는 동안 빈민촌을 돌며 의료선교의 첫걸음을 땠고 가난과 질병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에 눈을 뜨게 되었다. 의료선교의 비전을 확인하고 미국으로 돌아와 선교활동을 준비하고 있던 어느 날, 편지함에 발신인이 없는 편지 한 통을 발견하게 되었다.

 

인생을 뒤흔든 편지 한 통

도쿄 직인이 찍혀있는 겉봉투를 �터보며 '으레 오는 편지이겠거니'하고 편지를 뜯었다.

<조국에서 당신 부부를 초청합니다>

박세록 대표의 인생을 180도 바꿔버린 1988년의 편지. 그것은 북한에서 온 초청장이었다.

"당시는 냉전 체제가 아직도 서슬 시퍼렇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북한으로 간다는 것 자체가 쉬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는 잘못 했다간 살아서 못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역지에 늘 동행하던 제 처는 집에 있으라 하고 저만 가까운 장로님과 함께 북한에 들어갔었지요.

이렇게 북한 의료사역을 시작한지 올해로 20년. 사재를 털어 평양 제3인민병원을 도와 개원한 일, 북한에서 집도한 최초의 외국인 의사가 된 일, 지원금이 재대로 사용되는지 철저하게 감독하다 북한 당국의 눈 밖에 나 두 번이나 추방당한 일, 탈북자들의 눈물겨운 모습을 본 후 북한 국경지역에 병원과 진료소를 세운 일 등 며칠 밤을 새워 들오도 모자란 수많은 이야기 보따리를 '사랑의 왕진가방' 책(두란노 출판)에 담았다.

 

"하나님이 빚 갚으시래요!"

"2004년 북한 주민들을 위해 왕진가방 1만개를 보내기로 결정하고 필요한 금액을 산정해 보니 무려 5억이 넘어가는 겁니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두달동안 집중 모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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